외할머니가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오늘 날짜가 며칠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바로 답하지 못했고 그렇게 치매의 확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가끔은 저도 오늘의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휴대전화를 봐야만 날짜를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같겠죠. 그렇게 외할머니는 치매 의심 환자가 되었지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가족들의 이름, 생일, 사는 곳을 모두 기억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 블레이크가 초반에 의사와 상담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이런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켄 로치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켄 로치 감독은 1936년 생으로 노장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할 정도로 감각과 실력이 뛰어난 감독입니다. 다니엘 블레이크 역은 배우 데이브 존스가 맡았습니다. 데이브 존스는 영화를 찍어본 적 없는 코미디언이라고 하죠. 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 작품을 통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를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극 중 다니엘과 캐미를 이루었던 케이티 역은 배우 헤일리 스콰이어가 맡았습니다. 헤일리 스콰이어 또한 이 작품이 데뷔작입니다.
신인 연기자와 작업을 하는 것은 켄 로치의 특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보다 카메라 앞에 던져놓으면 한 사람의 삶이 우러나오는 것을 더욱 가치 있게 생각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수 일을 하다 심장병으로 인해 실직을 한 상태입니다. 이에 질병수당을 받기 위하여 복지 지원 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질병수당을 받기에는 건강 상태에 '이상 없다'는 심사만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은 재심사를 요청하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다시 찾아갑니다. 하지만 평생 컴퓨터를 다뤄본 적 없는 그가 디지털로 증빙 서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윽박이 다니엘을 괴롭힙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오랜 기간 복지 정책 아래서 괴롭힘을 받다가 승소를 앞두고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복지국가의 현실과 우울한 미래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꼬박꼬박 일을 하고 세금을 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복지로부터의 도태라는 모순을 잘 보여줍니다. 켄 로치 감독의 개성이며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이 작품이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족이, 친구가 겪을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때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의 위험에 처했었죠. 대표적인 복지 정책으로 만 19세 ~ 34세 청년들을 위한 '청년 긴급수당'을 내세웠지만 "대학생(재학 및 휴학)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 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 또한 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생계유지와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필수인 친구들도 많았죠. "청년"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서는 결국 "청년"을 챙기지 않았던 정책.
복지 혜택을 받아본 사람은 '좋다' 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엉터리다'라고 말하겠지만 제게도 복지란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부정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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